불교중앙박물관 2018테마전
「붓다의 탄생-불복장」 전시 개최
“보물 제337호 장곡사약사여래좌상 복장 최초 공개”
1. 전시개요
1) 불교중앙박물관(관장 오심스님)은 2018 무술년을 맞아 ‘붓다의 탄생-불복장’ 테마전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불복장佛腹藏은 붓다의 탄생을 위해 불상과 불화에 발원문, 후령통, 다라니, 경전, 직물류 등을 봉안하여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의식입니다. 복장 안립 후 의식을 통해 태어난 불상, 불화는 중생들에게 이상적인 불국토를 구현하여 경건한 아름다움과 환희심을 느끼게 합니다.
2) 불교중앙박물관 2018테마전 <붓다의 탄생-불복장>은 2월 6일(화) 오후 3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5월 31일(목)까지 보물 5건, 지방유형문화재 4건을 포함하여 총58건 79점이 시대별 다양한 형태의 복장유물과 그 의미를 살려 전시됩니다.
3) 무엇보다 이번 전시에서는 현재 보물 제337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의 복장유물이 최초로 대중들에게 공개됩니다. 장곡사 복장유물의 가장 큰 특징은 풍부한 명문을 남기고 있어 불상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점입니다. 특히 10m에 이르는 발원문(1,058×47.8cm)은 단연코 그 크기와 수많은 시주자의 이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이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이 불상의 조성을 주도하고 붉은 비단에 발원문을 쓴 백운白雲은 고려 말의 백운경한景閑(1298-1374)으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의 저자로 추정됩니다. 이 전시를 통해 복장유물이 지닌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밝히는 초석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4) 이번 전시는 복장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을 살펴봄으로써 복장의 가치를 되새겨 보는 것에 의미를 두고자합니다. 불상은 상을 조성한 후 복장腹藏 의식을 통해 생명력을 갖게 되며 동시에 신앙의 대상이 됩니다. 따라서 복장물 또한 그 자체로 신앙의 대상이며, 경전을 포함한 여러 유물과 발원문, 조성기 등은 불상의 조성 경위와 시기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2. 전시구성
1부. 복장의 의미: 불복장이란
석가모니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전 제자들에게 ‛스스로 등불이 되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自燈明 法燈明’ 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을 연모한 이들은 부처님의 형상을 제작하여 예경하고자 하였다. 무불상시대를 거쳐 32상相 80종호種好의 형상을 갖춘 불상이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불상이나 불화를 법당에 봉안하기 전 예배대상으로서 존숭하는 불복장의식佛腹藏儀式이 발전하였다. 불상 안에 사리와 오보병, 경전, 발원문, 시주물 등을 엄격한 절차에 따라 넣는 불복장의식을 거행함으로서 불상은 단순한 조각품에서 예배의 대상이자 불보살의 현신이 된다. 즉 불복장의식은 불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마지막 과정이다. 불상의 복장물에는 불상을 조성한 사람들의 신앙과 사상 그리고 종교 의식과 의례 등 모든 요소들이 담겨 있다. 또 그 자체로 신앙의 대상인 동시에 경전을 포함한 기타 여러 유물과 발원문, 조성기 등은 불상의 조성 경위와 시기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상까지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2부. 불복장의 시작: 고려시대
우리나라에서 불상의 사리장치의 시원적 형태를 보여주는 것은 대좌에 사리호를 안치한 통일신라시대 산청 내원사 석조비로자나불상(766)이다. 그러나 불상에 불복장을 관례적으로 봉안하는 것은 복장의식과 관련된 경전의 유입 시기와 실제 불상의 복장물 조사를 통해 고려중기 이후로 파악된다. 복장의식은 불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중요한 것으로 사리를 봉안하는 것 이외에 그 구성과 안립에 매우 복잡한 체계를 갖고 있다. 고려시대 불상 중에서 복장물이 발견된 예로는 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274 이전),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1346), 서산 문수사 금동아마타여래좌상(1346), 화성 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362 이전) 등이 있다. 고려시대 불상의 복장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리를 넣는 용기는 나무나 은 등으로 만든 뚜껑이 있는 합의 형태이다. 합에 주사朱砂로 팔엽八葉이나 범어를 그리고, 안에 사리를 모시고 심주, 오곡, 오향, 오보병 등을 함께 넣었다. 이 외 불상조성과 관련된 조성문과 발원문, 발원자들이 시주한 경전과 의류가 납입되었고, 불상 내부의 충전재로 다라니를 인경하여 채웠다.
3부. 복장의 발전: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불상에 복장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불복장품들이 급격히 증가하였고, 그 사례도 매우 많다.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물은 고려시대의 복장의식을 계승하면서도 더욱 체계화되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사리를 넣는 장치는 고려시대에는 주로 넓적한 합에 납입하였지만 조선시대에는 긴 원통형에 후혈이 있는 뚜껑을 덮은 후령통에 봉안한다. 이 오보병이 들어가는 합을 ‘후령통’이라는 명칭으로 통일하였다. 그 외 경전과 조성문과 의류, 직물류, 다라니등을 넣은 것은 고려시대와 유사하다. 불상의 복장물은 그 자체로 신앙의 대상인 동시에 불상조성 당시와 중수 때의 사찰 내에서 불사를 이끌었던 소임자와 제작 화사등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어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4부. 불화의 복장
복장腹藏은 불상에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불화에도 복장을 납입하였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大方廣佛華嚴經變相圖> (754~755년, 국보 제196호)와 함께 발견된 사경의 권축 목심 양쪽 끝을 마무리한 수정안에 각각 사리가 1알씩 발견되었다. 이것은 불화에 납입되는 복장과는 다르지만 사경 및 변상도에 사리를 납입했음을 보여준다. 고려 후기 불화인 아미타내영도(일본 쇼보지正法寺, 고려후기)의 뒷면에 보협인다라니경寶篋印陀羅尼經이라는 경전명칭이 적힌 종이가 발견되어, 고려 후기 불화는 복장의식을 하고 봉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 감로도(일본 야쿠센지藥仙寺, 1589년)에는 복장낭이 그려져 있어, 조선 전기에 이르면 불화에 복장낭 형태로 복장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에 이르면 불화에 복장낭을 앞면에 걸거나 뒷면에 복장물을 넣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불화의 장황을 액자 형태로 하는 것이 유행하면서 불화 뒤에 복장물을 봉안한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불화 복장물 특징은 불화의 공간적 한계로 불상에 복장을 충전하기 위해 납입되는 다라니, 경전, 직물류 등이 생략되고, 복장의 핵심인 후령통으로 집중하여 조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