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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불교중앙박물관 테마전<서울 지역 왕실발원 불화_ 수국사, 흥천사>
전시기간 : 2017년 2월1일 ~ 5월31일

불교중앙박물관 | 2016.12.19 17:40 | 조회 1130

[불교중앙박물관에서는 2017 테마전]

 

"서울지역 왕실발원 불화" 개최

 - 조선 왕실의 원당이었던 수국사와 흥천사의 불화를 통해 왕실발원 불화 조명

 

 

1. 전시개요

 1) 불교중앙박물관(관장 현조스님)은 서울지역 왕실발원 불화를 주제로 2017년 테마전을 진행합니다.

     이번 전시는 21() 개막하여 331()까지 2163점의 성보문화재들이 선보이게 됩니다. 

 

 2) 조선시대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정하고 불교를 억압하였지만, 불교는 전 시기동안 대중을 위로하고

    어루  만져주는 신앙으로 유지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왕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왕실은

    초기부터 불사를 후원하고 왕실의 명복을 기원하였고, 이러한 전통은 불교의 탄압이 가중되던 조선 말기

    까지  도 지속되었습니다. 왕실의 안녕과 기복을 위한 왕실의 원당願堂 사찰이 다수 지정되고 건립되었

    으며, 비빈妃嬪이나 종친宗親 또는 상궁尙宮들이 주요 발원자가 되어 많은 불상과 불화를 조성하였습니다.
 

3) 조선 말기는 왕실의 후원으로 조성된 불화가 가장 많은 시기입니다. 조선 말기의 왕실발원 불화의 큰 특징은

    귀한 재료인 금의 적극적인 사용입니다. 이 시기의 왕실발원 불화에서는 부처님의 광배 안쪽 면을 금박으

    로 가득 채워 존상을 장엄하는 등 적극적으로 금이 활용되었습니다.

 

4) 이번 전시에서는 한성부漢城府와 경기도京畿道의 왕실 원당이었던 수국사와 흥천사의 불화를 통해 조선 말

    기의 왕실발원 불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2. 전시구성

 

하나. 황금빛의 사찰, 삼각산 수국사守國寺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 자리 잡고 있는 수국사守國寺는 세조 5(1459) 정인사正因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懿敬世子가 요절하자 고양 봉현蜂峴에 장사지내고 그의 극락왕생을 위해 능 인근에 조촐한 규모로 정인사를 지었다. 12년 뒤 성종 2(1471)에 인수대비仁粹大妃의 후원으로 대대적인 중창불사가 행해져서 총 119칸의 대가람이 되었다.

이후 정인사는 연산군 10(1504) 화재로 소실되었다. 몇 번의 중수를 거치며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18세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무 4(1900)에 월초月初스님에 의해 현자의 자리에 수국사가 중창되었다. 이는 1898년 당시 세자였던 순종이 병이 나 왕실에서 월초스님께 백일기도를 부탁드렸는데, 80일째 되던 날 병이 낫게 된 것을 고종이 기뻐하여 재물을 희사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수국사는 현대에 이르러 법당 안팎을 금으로 개금한 황금보전을 신축하여, 서울의 황금사찰로 알려져 있다. 수국사에는 고려시대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하여 조선 말기 조성된 불화 등 많은 성보가 전해지고 있다. 특히 수국사의 불화들은 1907년경 여러 전각의 중창이 이루어진 후 일괄 조성된 것으로 왕실불화의 화려한 양식을 잘 보여준다.

 

          <
        <수국사 극락구품도>

 

. 600년 조선왕실의 원찰, 흥천사興天寺

서울 흥천사는 정릉의 능침사찰陵寢寺刹로 창건되었다. 조선 태조 6(1397)에 태조가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정릉貞陵을 조영하고, 그 원당으로 능 동쪽에 절을 세워 흥천사라 칭하였다. 당시 흥천사는 170여 칸에 이르는 대찰大刹었으며, 억불숭유정책에도 불구하고 도성 내에 건립된 기념비적인 사찰이다. 흥천사는 태종 9(1409)에 정릉이 현재 자리인 북한산 기슭으로 옮겨지게 되면서, 정릉의 원당으로서 이건되었다.

17세기 후반에 들어 정릉의 능역이 정비되는데, 능역 밖에 불전이 새로 조성되며 신흥사新興寺로 명명되었다. 도성에서 매우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신흥사는 순조 대부터 왕실원찰이 되어 헌종·철종 대에 꾸준히 주요 불전을 왕실의 후원으로 건립하였다. 그리고 고종 2(1865) 흥선대원군에 의해 대대적으로 중창되고 흥천사興天寺로 명명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흥천사는 19세기 중반에 이르면 왕실의 원찰로서 국가의 복을 기원하는 사찰로 자리매김하였다. 흥천사에는 왕실에서 발원한 성보들이 전래되고 있어 그 역사적 가치를 증명해 주고 있다.

 

 
  <흥천사 극락구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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