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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 - 열반, 궁극의 행복
전시기간 : 2014. 07. 02 ~ 2014. 08. 24

불교중앙박물관 | 2016.10.11 20:56 | 조회 2219

하나. 부처님 열반의 의미

 

열반이란 일체의 번뇌를 끊어 깨달음을 완성한 경지, 적멸寂滅, 원적圓寂을 뜻하며,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으로 니원泥洹, 열반나涅槃那등으로 번역됩니다. , 모든 생명체가 반드시 거쳐야 할 죽음과는 다른 죽음을 초월한 어떤 것으로, 수도修道의 완성된 결과로 진리체득眞理體得 곧 본체本體의 구현을 열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생존했던 붓다의 열반은 육신의 소멸일 뿐이며, 본래의 생명을 잃지 않고 영속하는 것입니다. 붓다는 열반했으나 열반한 것이 아니며, 인류의 행복을 위해 지상에 내려온 실체로 열렬한 경배대상이 됩니다. 불교에서 붓다의 열반이 차지하는 의미는 매우 크기 때문에, 열반은 불교미술이 조성된 초기부터 등장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열반과 관련된 미술품들을 통해 부처님 열반의 의미와 그 모습들을 되새길 수 있으며, 이후 사리신앙의 성행으로 이어졌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사리를 담는 그릇, 사리장엄구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다비茶毘를 통해 수많은 진신사리眞身舍利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징표이자 부처님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물로 인식되고 숭배되었습니다. 사리舍利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 ‘sarira’를 한자어로 표현한 단어로 불교가 중국에 전해된 초기부터는 주로 부처님의 시신이나 유골을 뜻하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사리를 모시기 위해 많은 탑들이 건립되었으며, 사리는 사리장엄구, 혹은 사리갖춤이라고 부르는 불교금속공예품 내부에 안치되어 탑 안에 봉안되었습니다. 남아있는 사리장엄구들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불교금속공예품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는 미감과 안정성을 고려하여 그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기술자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신앙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리장엄구는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도 유리琉璃, , , 과 같은 용기들을 여러겹 겹쳐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인 법식입니다. 이는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부처님의 보관寶棺이 금, , , 철의 4중관이었다고 하는 내용과도 일치합니다. 이 외에도 사리를 공양하기 위한 진귀한 구슬, 직물, 금속공예품등과 같은 공양품들도 함께 봉안되어, 사리장엄구는 역사의 보고寶庫라 고 할 수 있습니다.

 

 

. 불상과 불화에 모셔진 사리

 

석가모니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전 제자들에게 스스로 등불이 되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고 전하였지만 부처님을 연모한 이들은 부처님의 형상을 제작하여 예경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사리는 부처님을 대신한 성물聖物로써 진신처럼 숭배되었고 이를 안치한 탑을 조성하는 행위를 공덕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이는 무불상시대를 거처 3280종호種好의 형상을 갖춘 불상이 조성되고 신앙의 중심체로 자리매김하면서 사리를 안치하는 것이 조형물에 신성함을 부여하는 불복장의식佛腹藏儀式으로 확장되어 나타납니다.

불복장의식은 불상이나 불화 등이 법당에 봉안되기 전 예배대상으로서의 존숭하는 의식이며, 이를 통해 불상과 불화는 신앙의 대상이 됩니다. 탑에 사리를 봉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상과 불화에 사리를 봉안하는 것은 당시대 사람들의 염원과 신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안된 복장물에는 그 시대의 뛰어난 공양품과 서적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당시대를 진귀하게 살펴볼 수 있는 타임캡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사리신앙의 다양한 변화

 

사리에 대한 신앙 형태는 시대에 따라 다양화되어 사리를 봉안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사리와 동일시하여 봉안하는 법사리신앙이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유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탑 안의 사리장엄구와 함께 불상들이 봉안된 사실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확인됩니다. 사리는 탑에만 봉안되는 것이 아니라 불상의 내부에도 봉안되고, 또 불상에 사리를 모신채 탑 안에 봉안되기도 합니다. 고려시대부터 불상봉안의 예가 많아지며, 조선전기까지 굉장히 성행합니다. 이전에 세워진 탑을 중수하면서 불상이 봉안되는 경우도 다수 확인됩니다. 특히 조선초기의 탑내 봉안불상은 불상의 복장에 사리를 넣으면서 불상자체가 원불이 되어 탑 안에 모셔진 것으로 조선초기의 불상을 봉안하는 의미는 독특한 불상에 대한 신앙으로 여겨집니다.

 

 

다섯. 스님의 열반, 승사리장엄

 

불제자인 스님의 최고의 목표 역시 열반입니다. 구도자의 길을 걸어온 스님들의 열반의 순간 역시 부처님의 열반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공양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석가모니 재세시에 제자인 사리불舍利佛과 대목건련大目揵蓮이 죽은 뒤 화장하고 유골을 수습하여 탑 안에 안치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스님이 입적하면 승탑을 조성하고 그 안에 사리를 안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승탑 안에 안치되는 사리장엄도 불사리장엄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국사제도가 폐지되면서 승탑 및 사리장엄구 제작도 위축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불교가 중흥하면서 다시 승탑건립이 활발해졌습니다. 특히 17세기 상장례喪葬禮가 새롭게 정립되고, 계파系派와 문파門派가 성립되면서 승탑과 승사리장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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